야구에서 3할이 가진 상징성은 영원불변의 기준점이다. 선수생활 동안 단 한시즌도 3할 타율을 기록하지 못한채 은퇴하는 선수가 부지기수이며 그래서 달성하기 힘든 3할을 예술(Art)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 3할을 깔고 들어가는 소위 "S급" 선수들은 상황이 다르다.
여타의 선수라면 충분히 칭찬을 해줄 3할 타율이지만 이런 선수들은 그 언저리의 타율만 기록해도 부진했다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3할타자와 3할 3푼타자, 그리고 3할 5푼 타자는 격이 다르다.
장타보다는 보다 정교함에 치우친 타격기술을 가졌던 토니 그윈(전 샌디에고)과 같은 선수는 3할 5푼 이상의 고타율을 통산 7차례나 차지할정도로 특화된 컨택트 능력을 가진 타자였다.
지금은 이러한 선수들이 전무하지만 통산 .333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라면 3할대 초반의 타율만 기록해도 부진한 시즌이라 평가받는 선수다. 실제로 그는 2001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 3년을 주기로 3할 3푼 이상의 타율과 3할대 초반의 타율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떨어지는 해가 2년, 그리고 3할 5푼 이상을 기록하고 난 이후 다시 평균보다 떨어지는 시즌을 연속해서 기록했다.

먼저 이치로가 미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소위 `진자타법'을 버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윤석구의 야구세상에서도 이것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지만 디테일하게 언급했던 기억이 없기에 이부분을 2001년과 비교해 보며 왜 그는 타격폼을 수정을 해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부터 살펴보자.



오릭스 시절 이치로는 처음 오픈스탠스에서 앞다리를 어떠한 변화(이동과정에서)도 없이 그대로 리프트(Lift)를 시작한다. 좀 특징적인 것은 리프팅 탑(Liftting Top)지점에서는 앞발끝이 포수쪽을 가르킬 정도로 잡아당기는 폭과 다리를 이동시키는 동작이 큰데, 이 영상 이후의 장면은 없지만 저렇게 들어올린 앞다리를 그대로 길게 스트라이드(Stride)를 해 자신의 컨택트 타이밍을 잡는다.

하지만 2001년 메이저리그 루키시즌에는 일본에서 했던 동작과는 전혀 다른 이치로가 되어 있다.
우선 준비자세에서의 모습을 보면 일본시절에는 완전한 오픈 스탠스에서 앞다리를 이동했지만 시애틀에서는 거의 스퀘어 스탠스(square stance)에 가까운 앞발위치를 놓고 비스듬한 위치에서 타격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다리를 들어올리는 과정이 길어서 이 타격자세를 그대로 빅리그로 가져오기엔 문제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보다 평균적으로 빠른 빅리그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을 쳐내기엔 자신이 일본에서 취했던 타격동작이 맞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관한 일화가 있긴 하다.

원래 이치로는 2000년 시즌전 시애틀의 스프링캠프때까지만 해도 일본시절과 같은 타격폼이었다.
실제로 이치로는 시범경기때까지 진자타법을 사용하며 빅리그 투수들의 투구에 자신의 배팅타이밍을 맞춰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규시즌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오른쪽 영상과 같은 타격자세로 바꿔버렸다. 일부에서는 이걸두고 급작스럽게 타격폼을 수정해 금방 적응하는 이치로를 가르켜 `천재타자'라고까지 불렸지만 사실 이 타격자세는 이치로가 훗날 미국진출을 염두해 일본에서부터 틈틈히 연습한 타격폼이다. 이치로 스스로도 밝혔듯이 일본에서 자신의 타격동작이 미국에서는 어떠한가를 실험삼아 사용했던것 뿐이다.

일본시절 이치로는 배트를 쥐고 있는 그립이 가슴위치까지 내려와 있다가 스트라이드 과정에서 치켜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뒤쪽으로 잡아당겨(Load)졌다가 나왔지만 2001년에는 그립이 처음준비자세에서 귀 옆에 미리 위치해 있다 다리를 짧게 든 후 롱 스트라이드를 하며 타이밍을 맞추는 스타일로 변형시켰다.
그가 2001년 아메리칸리그 MVP와 신인왕을 차지할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타격폼 수정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타격폼을 간소화한게 그대로 적중했다. 이해에 이치로는 타율 .350을 기록했다.

2001년 데뷔때부터 센세이션을 일르켰던 이치로는 2002년과 2003년에 타율이 각각 .321과 .312를 기록하며 점점 하락한다. 자신의 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걸 느낀 이치로는 2004년부터는 기존의 타격준비과정에서 미세하게 나마 타격폼에 수정을 가한다. 앞발끝만 지면에 닿게 하며 스트라이드시 다리의 이동시간을 더 짧게 함은 물론 이전보다 상체를 더 웅크린 상태로 바꿨다. 또한 배트를 쥐고 있는 그립 역시 웅크린 상체만큼이나 이전에 비해 미리 더 자신의 귀 뒤쪽으로 치우친 상태가 돼 있다.

타격에서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니는 스트라이드&로드(Stride&Load)의 일련과정, 즉 이 두가지 포지션을 함에 있어 보다 유리한 타격동작으로 바꿔 버린것이다. 2004년 전만해도 이치로의 타격전과정이 다소 투박한 느낌이었다면 이쯤부터 해서 이치로의 타격은 타격시 배트가 발사 되는 순간이 마치 스프링을 연상케 할만큼 리드미컬해졌다.
미세한 타격폼 수정을 가한 이해에 이치로는 타율 .372의 엄청난 고타율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대 한시즌 최다안타(262개)신기록까지 작성한다.

2004년 .372라는 고타율을 기록한 이치로는 그러나 2005과 2006년에 각각 타율 .303과 .322로 평범한(?) 3할타자로 성적이 급감했다. 여기에서 이치로는 2007년 다시한번 자신의 타격폼에 수정을 가한다.
웅크렸던 상체를 업 라이트 스탠스(Upright stance) 형태 즉, 상체를 다소 꼿꼿히 세웠고, 처음 준비자세에서 배트를 쥐고 있는 그립 위치 역시 귀 옆이 아닌 그 위쪽까지 올라간 상태로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스윙의 과정은 그렇지 않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이치로의 준비스탠스에서의 양 다리의 폭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치로의 타격준비자세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진이 타자배꼽 정면에서 찍은것이 아니기에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2007년 준비자세에서의 양 발 간격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될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래도 그 전까지만 해도 높지는 않지만 스트라이드를 하기전 앞발을 지면에서 이탈한(Knee lift)후 다리를 내딛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양발간격은 그 공간에 벽돌하나가 겨우 통과될정도로 매우 협소한 양발폭의 준비자세로 바뀌어져 있었을뿐만 아니라, 다리를 들지 않고 그 좁은 준비스탠스의 그 자세에서 그대로 스트라이드를 시작한걸로 타이밍을 잡는 타격의 근간을 바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치로의 준비스탠스에서의 자세 즉, 11자 모양(타자 배꼽 정면에서 봤을때)의 폭이 매우 좁은 양발 간격이 이치로의 최근 모습이다. 이해에 이치로는 미세한 타격폼 수정으로 .351의 고타율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 좌로부터 2001 → 2004 → 2007 → 2009  이치로 타격준비자세의 변화모습

하지만 이치로는 2008년에 다시한번 타율이 급락하며 .310을 기록, 빅리그 데뷔후 2번째로 낮은 타율을 기록하게 된다. 맨 오른쪽 사진은 2009년에 다시한번 타격자세를 손봤던 이치로의 모습이다.
2007년에 비해 뒷 무릎을 살짝 굽히며 다소 업라이트였던 상체도 약간 숙였으며 배트를 쥐고 있는 그립위치 역시 미리 귀 뒤쪽에 가 있는 것을 앞쪽으로 가져와서 준비자세를 잡고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앞으로 이치로가 다시한번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한다는건 힘들어 보인다.
파워포지션에서 배트를 장전하는 모습을 보면 이젠 정말로 "똑딱이 이치로"로 완전히 변모를 했다는 느낌을 타격자세로도 충분히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치로는 부상으로 인해 근 한달을 날려먹는 바람에 9년연속 세자리수 득점과 30도루는 실패했지만 다시한번 3할 5푼대(.352)의 고타율(리그 2위)을 선보이며 알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에 이어 현역 통산 타율 랭킹 2위(.333)자리를 굳건히 했다.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뛰어난 타격기술을 가진 타자들을 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타격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야구에서의 타격은 당구공처럼 머물러 있는 대상을 가격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시즌을 치르다 보면 그리고 해가 바뀌는 세월만큼 자신도 모르게 원론적인 폼에서의 문제점이 미세하게나마 나타나곤 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수 없듯, 이치로를 비롯한 모든 타자들 역시 이러한 문제점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는 일이다. 타자가 부진에 빠지면 완전히 타격동작을 뜯어 고친다면 모를까, 이러한 대타자들도 자신이 지닌 타격폼을 큰 틀에서 건들지 않고 미세하게 수정하는 것은 어느세대에서나 볼수 있는 일이다.


사진&GIF/ 새애틀 매리너스 * 영상 youtube.com * GIF 작업= 윤석구의 야구세상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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