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연속경기 홈런은 리그 수준과는 별도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록이다.


이대호(롯데)가 9경기연속 홈런을 쳐내며 위대한 기록을 써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위대한 타자 켄 그리피 주이어(시애틀) 등 3명, 일본은 그들 말대로 통산 세계최다홈런 신기록(868개)을 가지고 있는 오 사다하루(전 소프트뱅크 감독)와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평가받는 랜디 바스(전 한신)의 7경기 연속 홈런이 최고 기록이다.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14일 저녁 필자는 일본 기후현(
岐阜県)에 살고 있는 지인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오랫만에 안부 인사겸 걸려온 전화였지만 날이 날인만큼 야구 이야기가 빠질수가 없어서 넌지시 이대호의 9경기 연속홈런 신기록에 대한 의견을 유도했다.
야구라면 생업도 마다하지 않는 골수팬(이 친구는 주니치 드래곤스 팬이다)인 그는 여타의 일본 야구팬들과는 달리 한국야구에도 꽤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몇년전 김동주(두산)의 일본진출이 무산되자 왜 그가 일본에 못왔는지, 지난해 홈런왕인 김상현(KIA)의 출현에 낯설어 하며 그에 대한 신상정보를 캐묻는가 하면, 일본 진출전 김태균(치바 롯데)과 이범호(소프트뱅크)에 대한 정보를 물어봤을 정도다.


14일 이대호의 기록 수립 소식은 일본의 지지통신과 교도통신이 발빠르게 전달됐다.
미국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와 AP통신에도 이대호 소식을 전했는데 일본이라고 놓칠리가 없다.
하지만 일본언론은 생각보다 이대호의 연속홈런 기록에 대한 비중있는 기사가 없다. 


‘그깟 한국야구에서의 기록’을 놓고 ‘세계신기록’이라며 떠드는 국내언론 기사를 인용보도(국내 연합뉴스 등)한것일뿐, 별다른 감흥이 없는듯한 느낌이다. 일본에 사는 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식은 들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의 뉘앙스가 짙게 묻어나왔는데, 야구를 국기로 삼는 일본야구의 그릇된 자존심에 ‘과거 니들은 어땠는데’ 라고 한마디 해줄려다 그만 뒀다. 생각의 차이가 감정의 차이로까지 변할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이었다.



물론 이대호의 연속 홈런 신기록이 일본 야구팬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언론 역시 그냥 가쉽성 기사로 처리하더라도 충분히 납득은 간다. 하지만 어느 스프츠를 막론하고 한 분야에서 이루기 힘든 기록이 나왔다는 것은 분명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야구로만 한정을 한다면 리그 수준 운운하며 그 기록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오 사다하루가 외다리 타법을 일본야구에 뿌리 내렸다면 이대호는 홈런타자에게 유연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시켜준 선수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대호의 기록이 세계신기록이 아니라는(한국야구 수준이 낮아서) 일부 평가 역시 ‘9경기 연속홈런의 최초’ 라는 의미에선 이대호의 기록 가치는 충분하다.
다른 곳도 아닌 일본 이라면 더더욱 이대호의 기록을 폄하해선 안된다. 그들은 이미 그러한 전례를 수없이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기록행진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던 리그니까.  또한 애국주의에 대한 이상한 기준을 갖고 있는 일본의 야구정서도 이해할수 없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역대 통산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 오 사다하루가 쳐낸 홈런갯수가 868개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 사다하루의 이 홈런을 놓고 세계신기록 이라며 떠벌린 곳이 일본언론이다. 그들 말대로라면 수준 낮은 한국리그에서 이대호의 연속경기 홈런 신기록이 나왔으니,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일본야구에서 오 사다하루의 통산 최다홈런기록 역시 그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야구에서의 이러한 기록들은 리그를 떠나 그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값어치는 그 자체로서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오 사다하루의 국적은 일본이 아니라 대만이다. 하지만 오 사다하루의 아버지는 중국인이다.
2차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서 태어난 오 사다하루는 전쟁이 끝난 후 당시 공산화가 된 중국국적 대신 대만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오 사다하루와 대만은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러한 것들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내에서도 오 사다하루는 일본인 이라는 인식의 틀이 박혀진듯 하다. 야구선수로는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받았던 오 사다하루는 이후 언론에서도 그의 국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관례의 지속성 때문인지 젊은 일본야구팬들은 그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야구에서의 배타성은 분명히 잘못된 문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 사다하루 이후 일본땅을 밟았던 외국인 선수들까지 인식의 전환이 작용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치졸하고 악랄한 짓은 21세기 현대야구로 넘어서까지 지속됐다.


비운의 홈런왕 터피 로즈. 비록 그는 떠났지만 그가 일본야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홈런은 타자의 능력이지만 기록경신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긴채. 산스포 닷컴


지난해 오릭스 버팔로스를 끝으로 일본을 떠난 터피 로즈라는 선수가 있다.

2001년 그는 당시 오 사다하루가 가지고 있던 역대 한 시즌 최다홈런(55개) 기록을 깰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시즌 초부터 폭발한 그의 방망이는 9월 24일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보스턴)에게 55호 홈런을 뽑아내며 오 사다하루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남은 경기에서 홈런 하나만 더 추가하면 새로운 기록달성은 물론, 1985년 외국인 선수 랜디 바스(한신, 홈런 54)가 차별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쉬움에 대한 보상을 만끽할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로즈는 노골적인 심판판정과 상대투수들의 정면승부 회피로 인해 끝끝내 56호 홈런을 쏘아올리지 못하며 타이기록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킨테츠가 마지막으로 남은 경기가 공교롭게도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있던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이었다. 오 사다하루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즈가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길 바란다는 멘트를 남겼지만 와카나 요시하루 배터리코치는 경기전 선수들에게 정면승부를 하지 말것을 주문했다.


특히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9월 30일 경기에서 로즈는 4번의 타석 기회를 가졌지만 상대투수가 던진 18개의 공 중 스트라이크는 단 2개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히 그를 봉쇄했다. 일본 언론 역시 로즈가 55호 홈런을 터뜨린 이후부터 ‘오 사다하루 기록지킴이’의 선봉에 섰을 정도로 그 배타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 아나운서는 생방송 도중 “우리와 피부색과 피도 다른 선수에게 오 사다하루 감독의 기록이 깨지지 않길 바란다.”라며 적대적인 멘트를 날렸을 정도다. 결국 로즈는 다이에와의 3연전 동안 단 한번도 배트를 휘두르지 못하며 어쩌면 다시는 도전하기 힘든 위대한 기록에 대한 다가섬을 끝내야 했다. 이러한 전례는 로즈 뿐만 아니라 이전의 랜디 바스와 이후 알렉스 카브레라(현 오릭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우는 다르지만 만약, 이대호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연속경기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었다면, 그리고 오 사다하루가 보유하고 있는 7경기연속 홈런쯤에 이르렀다면 과연 일본은 이대호에게 정면 승부를 해줬을까?  어디까지나 가설에 기반한 추론이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해왔던 전례를 감안할때 2002년 카브레라처럼 고의로 히트 바이 피치드볼을 얻어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러한 부끄러운 야구정서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이대호의 9경기연속 홈런 신기록에 침묵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세계신기록’이란 표현이 못마땅하면 최소 양심있는 야구인들중에 ‘우리는 과거 기록 도전에 대한 배타성이 있었지만 한국야구는 이대호와의 승부를 회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했다’ 의 기사 하나쯤은 꼭 나왔으면 싶다. 시즌 막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롯데와 KIA의 4강싸움의 상황까지 첨가하면 더욱 좋겠다. 끝으로 이대호의 연속홈런 신기록에 너무 배 아파 하지 마시라.
혹여 일본에서 이대호의 9경기 연속홈런 신기록을 깨는 선수가 나오면 나 역시 칭찬 기사를 꼭 써줄테니까.


사진/ 롯데 자이언츠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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